가상 현실이 실제 세상의 일부로 인지되려면
메타버스(Metaverse)
최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소위 '버즈워드(buzzword)'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인지 가상인지 알기 어려울 정도의 세상을 경험하는 경우는 아직 많지 않지만, 기술이 발전하고 디지털 환경이 일상의 일부로 들어오면서 흔히들 말하는 가상 공간(virtual space)이라는 개념으로는 설명하기가 어려운 가상 '현실'이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는 이를 메타버스로 설명한다.
사실 SF 영화를 즐겨 보는 사람이라면 메타버스 세상을 간접적으로 나마 이해할 수 있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사람들은 '오아시스'라는 가상 현실 속에서 살아간다. 영화 속 오아시스는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가상 현실로 구현돼 있으며, 그 공간에서 사람들은 경제 활동까지 한다. 말 그대로 현실의 확장이 실현되는 실재(實在)하는 공간인 셈이다.
가상현실이 '현실'이기 위해서는 몇가지 조건들이 수반된다. 사실 이 조건들이 기술적 구현의 한계로 인해 진짜 현실과는 구분되는, 말 그대로 가상 공간의 구현 수준에 불과해 매번 "언젠가는 미래에 구현될" 가상 현실로써 이슈가 되다 사그라든 적이 많았다. 과연 우리는 진짜 메타버스를 근미래에 경험할 수 있을까?
메타버스가 구현될 선결 조건
1992년 미국의 SF 소설가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 크래시(Snow Clash)'는 가상의 분신이자 실재하는 독립체인 '아바타'와 가상세계인 '메타버스'의 구체적인 모습을 처음으로 생생하게 묘사한 장편 소설이다. 여기서 묘사된 메타버스는 물리학과 지리학을 전공한 닐 스티븐슨의 현실 감각이 반영돼 가상공간의 작동 및 구현 방식이 현재 논의되는 메타버스의 구현에 관한 기본 원리를 정확하게 예언했다고 평가 받는다.
무엇보다 이 개념이 이미 2003년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라는 게임을 통해 현실화 되었을 만큼 제한적으로나마 구현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충분한 가능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메타버스가 구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상 '현실' 이라는 용어에 맞게 ▲현실 세계와 같이 가상 현실에서 사람들이 아바타, 혹은 캐릭터로 모여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가상현실 속에서 경제 활동을 포함한 여러 가능한 활동들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선결 조건들이 있다.
실제 메타버스 예시로는 앞서 언급한 세컨드 라이프를 포함한 게임 분야에서 그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포트나이트의 파티 로얄이나 작년 코로나19를 등에 엎고 엄청난 돌풍을 일으킨 동물의 숲, 최근 상장해 주목받는 로블록스 등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홀로렌즈를 활용해 메타버스 개념을 적용한 서비스들을 제공하고 있으며, 네이버의 제페토 역시 3D 기반 아바타 생성 기능을 바탕에 둔 메타버스 개념으로의 세계관을 확장시키는 전략으로 주목할 만하다.
무엇보다, 위 선결 조건들은 물리적으로 '현실'적인 묘사가 가능한 가상 공간을 제공하는 기술(예를 들면 유니티와 같은 기술들을 말한다)과 인지적으로 '현실' 세계와 같은 실재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세계관과 경험의 무한한 가능성이 구현 가능할 때 비로소 메타버스의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때론 기술적 수준이 높고 VR 기반에서 구현된 공간과, 반대로 인지적으로 사용자에게 몰입감이 높고 현실과 같은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구별돼 상호 발전해가는 단계에 있다. 특히 기술적 구현 가능성이 높아진 지금, 후자의 측면에서 어떻게 하면 사용자에게 매력적인 메타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만드는 페이스북과 같은 기업들은 오큘러스 등을 앞세워 새로운 개념의 소셜 네트워크 메타버스를 선보이겠다고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수년전부터 가상 현실에서의 소셜 상호작용 관련 연구들이 사용자 경험(UX) 측면에서 심심찮게 나온 이유가 바로 이를 구현해내기 위한 선행 연구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탓이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왜 메타버스에서 UX를 주목해야 하는가?
메타버스를 목표로 한다는 기업이 많아지고는 있지만 본질적으로 메타버스가 무엇인가에 대해 제대로 이해한 기업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기본적으로 메타버스는 가상현실을 구현하는 기술 자체가 본질이 아니다. 메타버스에서 기술은 단지 가상 현실을 구현하는 것에 불과하며, 본질은 사용자를 투영하는 캐릭터(character)를 포함한 하나의 세계관이 현실과 같은 수준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결국 가상현실을 진짜 현실과 구분되지 않도록, 혹은 최소한 구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스며들 수 있는 형태로 UX를 설계해내는게 핵심이다. 메타버스가 구현되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은 여전히 현실 세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용자가 메타버스 환경에서 경험하는 거의 대부분의 오감에 관한 상호작용은 UX를 고려해 원리에 타당하고 가장 현실적인 형태로 세밀하게 구현돼야 한다. 가속도, 방향성, 지향성 등 물리적 원리와 해당 감각의 특성을 반영한 상호작용 UX를 설계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메타버스 내에서 달리기를 한다고 해보자. 나의 아바타가 갖는 특성(키, 몸무게, 근력 등)에 맞춰 가속도가 붙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달리며, 바람 소리는 맞바람일 경우 앞에서 뒤로 부는 소리가 들리는 UX가 제공될 때 비로소 사용자는 메타버스를 실제 세상의 일부로써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실재와 같다는 UX (우리는 때로 이것을 Presence, 즉 실재감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한다)를 인지했을 때의 높은 메타버스 수용성은 이미 여러 관련 연구에서 증명됐다.
현실 세계와 구분되지 않는 메타버스의 UX 설계에 있어 또 다른 중요성은 사용자가 메타버스 환경에서 경험하는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상호작용에서 드러난다. 이와 관련, 2020년 8월 BTS가 공개한 Dynamite 뮤직비디오는 게임 포트나이트를 통해 공개되며 팬들과 메타버스 환경에서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구현 할지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준 적이 있다.
마치 특정 시간에 공연장에 모이는 팬들처럼 정해진 시간에 특정 공간에 팬들이 아바타로 모이고, 뮤직비디오를 정해진 시간에 볼 수 있도록 메타버스를 구현했다. 특히, 아이템을 구입해 BTS와 함께 아바타로 춤을 추면서 다른 팬들과 소통하는 상호작용 방식은 메타버스에서의 커뮤니케이션 UX를 극대화 시켜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가상현실과 진짜 필요한 현실의 간극을 메우는 UX
결국 메타버스는 또 다른 세상을 구현한 결과물이다. 사용자는 메타버스를 어떻게 활용하고 싶어할지, 메타버스가 제공할 세계가 실제 현실 세계의 그것보다 더 나은 점이 무엇이 있을지 알아가는 것은 모두 UX에 대한 연구를 통해 알아갈 수 있다. 왜냐하면 메타버스가 현실 세계에서 결핍된 것을 보충하거나 경험의 증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사용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자. 직주근접(직장과 주거가 근접 거리에 있어야 한다는 개념)의 문제로 인해 부동산 값에 고통 받는 것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실리콘 밸리 등 주요 도시에서는 흔히 겪는 문제인데, 만약 충분히 현실 세계로 인지할만한 UX를 구현한다면 어떨까? 메타버스에서 제공되는 업무 공간에 출근하고 실제 사무실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 같은 경험을 한다면 우리는 현실 세계와 구분짓지 않고 메타버스에 합류할 것이다.
모든 기술은 현실을 대체하기 보다는 사용자를, 아니 우리를 더 본질적인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줄 때 가치가 발현된다. 메타버스도 단순히 현실을 대체하거나 바꾸는 결과값이 아닌 수단에 불과하다. 사용자는 메타버스가 현실 세계의 일부로서의 역할을 한다면 누가 뭐래도 자연스럽게 메타버스를 실제 세상의 일부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제라도 메타버스에서의 UX에 대해 기업들의 보다 깊은 연구와 논의가 필요하다.
테크엠(Tech M) 기고 시리즈 「장 의장의 UX 혁신」: https://www.techm.kr/news/articleView.html?idxno=8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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